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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Angelosphere : preparing</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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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천천히 조금씩.</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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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5 Mar 2008 21:17:28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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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건이 있기 전까지는 완전히 눈팅만 하고 있었습니다만..개인적으로 재미있게 보고 있고 꽤나 좋아하는 블로그가 이런 종교 떡밥으로 도배되는 건 싫어서 리플 여러개 달 걸 그냥 이 트랙백 하나로 끝냅니다. 이제 차후에 지지고 볶고 할 일 있으면 여기서.<br><br>(3.6 현재) 리플 늘리기 싫어서 트랙백 따로 뺐는데 그래도 리플 하나 더 달게 되네요, 음..<a title="" href="http://docean.egloos.com/3639403"><br><br>아브라함의 시험.</a><br><br>하나님이 인간의 삽질로 까일 또 하나의 좋은 건수가 생긴 판이라&nbsp;굉장히 화난 상태로&nbsp;글을 적어내려가다, 이웃을 제멋대로 판단하고 정죄하지 말라는 말씀이 떠올라서 전부 지우고 새로 씁니다(약 4:11-12 / 롬 2:1-3 / 마 7:1-5).<br><br>- 하나님은 말씀입니다(요 1:-5). 이 말씀이 기록된 것이 성경이구요. 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세상에 내려온 것이 예수님입니다(요 1:14). 이걸 믿든 안믿든 일단은 자유예요. 그걸 받아들일 사람은 받아들이고&nbsp;깔 사람은 끝까지 깔테니까요(계 3:13). 아무튼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하셨고(창 1:1) 모든 것을 주관하시며, 하나님 자신의 능력에 대한 증거이자 신앙에 대한 표적을 보이시고(흔히 기적이라고 합니다만) 사람의 마음을 읽기도 하는데(창 18:12-15 / 막 2:6-12), 그 말씀을 문서로 기록하는 사람의 마음을 바로잡지 못하고 차후 있을 악의적인 왜곡에서 성경말씀의 본질을 지키지 못하겠습니까? 어떤 게 더 쉬우리라 생각하나요?<br><br>- 성경은 꽤 강력합니다. 위에 밝혔듯이 말씀이 하나님이기도 하거니와, 그 성경 밖의 세상만사에도 하나님의 이치는 알게 모르게 녹아있기 때문에&nbsp;그 흐름을 아는 사람은 감히 성경이 지어낸 거짓이라고 할 수 없을 겁니다(롬 1:20). 하지만 그 흐름을 읽은 사람들조차 애써 외면하는 사람들이 많으며(롬 1:21) 고집을 부리곤 합니다(롬 2:4-5). 허나 그것을 받아들인 교회-신앙공동체 안의 사람들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입으로는 주장하며&nbsp;몸으로는 자기 좋을대로 말하고 하나님이 아닌 자기자신의 지식을 과시하는 판인데(롬 10:2-3), 하물며 밖의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그저 멋대로 헐뜯고 비방하며(유 1:10) 성경도 좋을대로 해석해버리고(벧후 3:16) 하나님도 부정합니다(벧후 3:3-5). 인간은 하나님에게서 그저 도망치고 멀어지려는 존재입니다(롬 3:10-18). 그 선택받았다는 이스라엘 민족조차도(신 31:27).<br><br>- 자칭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대변한다며 자기자신의 지식이나 과시하는 통에(롬 10:2-3) 정작 하나님의 능력은 "줄여버리고" 비기독교인들의 반감은 더 사게 만드네요. 크리스천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싶다면 성경을 좀 더 읽으시고 성경에 좀 더 충실하세요. 크리스천이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무엇입니까? 키워들 도발 몇마디에 꼬투리 몇마디에 쉽게 무너지고 발릴 만큼 근거약한 것이던가요? 하나님이&nbsp;그렇게 아무 것도 없이 인간의 변호에나 숨어야 하는&nbsp;약한 분입디까? 해답은 성경에 이미 몇천년 전부터 나와있으니 좀 더 읽으시고 제발 머리 좀 더 틔우세요, 씨발. 신학에 얽매여서 정작 중요한 성경을 모른다면 이미 그 신학은 용도폐기 아닙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잣대로 틀어막을 생각인가요(막 7:6-8)? 사람들을 섬겨야 할 입장의 목사도 어느새 섬김받는 감투가 된지 오래고(마 23:8-11) "기독교"는 이미 썩어서 냄새를 피우고 있습니다(마 23:13-15). 대체 한국의 목사나 바티칸의 교황이나 다를 게 뭐예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신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이라고 전부 크리스천인 것도 아니고 전부 천국에 가는 것도 아닙니다(마 7:21-23).<br><br>- 그렇다고 본질에 대한 접근도 없이 그저 씹을 안주거리나 찾던&nbsp;승냥이떼에 대해 그닥 옹호해줄 생각은 없습니다. 아니, 그렇게 씹고 난도질하는 걸 원한다면, 정신적 승리법이 소원이라면 그렇게 하세요. 전 말릴 생각도 없거니와 말려도 들을 사람들도 아니니. 다만 행동에 대한 결과는 항상 염두에 두고 움직이기만을 바랍니다. 굳이 신앙을 화제삼지 않고 일반상식에서 말해도 통하지 않나요? 대접받고 싶은대로 대접하라.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생긴다. 인과응보...이것들을 말한 사람들이 크리스천이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오히려 그렇게 열심히 씹어주시면 신앙을 돌아보고 점검할 기회가 되겠군요. 진짜 신앙은 등따시고 배부른 현대가 아니라 생명을 위협받던 로마시대에 그 절정을 이뤘습니다.<br><br>(추가)<br>- 믿음 그 자체로&nbsp;고통받을 일 자체가&nbsp;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물론 믿음으로 물질적인 행복이나&nbsp;성공을(신 8:7-10), 혹은 승리를&nbsp;거둘 수도 있지만(히 11:33-34) 오히려 참혹한 일을 겪기도 합니다(히 11:36-38 / 고후 12:7). 다만 그 고통에 대해서 극복할 수 있는 힘은 가질 수 있게 되는 거죠(고후 12:9-10). 믿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게 되는 확신이지(히 11:1-3), 결코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아닌 겁니다. 오히려 그 물질적인 축복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외면하고 잊게 되는 일이 생기니(신 8:11-18) 아무쪼록 행복이나 고난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깊이있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마 13:18-23 / 막 4:13-20 / 눅 8:10-15). 기독교는 기복신앙이 아닙니다(요 6:26-27).<br><br>- 창세기 1장과 2장에서 나온 서술은 각각 거시적인 것과 미시적인 것으로, 1장은 전체적인 흐름을 이야기한다면 2장은 에덴동산이&nbsp;존재했던 지역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즉 1장에서는 전체 세계에서 그 "종 자체"가 생겨난 순서를 이야기하고, 2장에서는 에덴동산이 있던 지역에서의 국지적인 순서를 이야기하는 거죠. 천지창조 당시보다 좀 덜 붕뜨는 이야기로 예를 들면, 분명 진주만이 2차대전때에 일본군에 허벌난 것이 맞긴 합니다만, 2차대전이 진행중이었던 39-40년의 진주만은 그저 평화로운 곳이었습니다. 즉 "진주만은 2차대전이 일어나며&nbsp;일본군의 습격을 받았다"와 "2차대전의 전쟁시기에서도 평화롭던 진주만은 일본군의 습격을 받았다"가 사실 상호모순된 서술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걸로 이해가 된다면 다행이겠습니다만..<br><br>- 안믿는 사람들은 흔히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정복전쟁만을 놓고 하나님은 전쟁신이라느니 잔인하느니 자기 민족만 챙기느니 하고 비방합니다. 마치 장님이 코끼리 코만 만지면서 코끼리는 거대 지렁이라고 판단하는 것과 똑같은 일인데, 성경 전체를 놓고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도 엄격했고, 이방민족에게도 너그러웠습니다. 정복전쟁 중간에도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으로 패전을 경험하기도 하고(수 7:1-5), 정복전쟁 후에도 불순종으로 이방민족에게 계속 침략당해야 했으며(사사기 전체), 그 다윗왕도 불순종으로 몇차례나 징계를 받고(삼하 12:7-15), 솔로몬 대에는 아예 왕국이 분열당하며(왕상 11:29-36), 분열당한 왕국도 결국은 수차례에 걸친 경고와 권고에도 불구하고 불순종으로 모두 멸망당하게 됩니다(왕하 17, 25). 반면 이방민족 역시 구원받을 사람은 구원받았는데, 그 정복전쟁 기간에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목숨을 건지고 다윗왕의&nbsp;고조모가 된&nbsp;가나안 기생 라합이 있었고(수 2, 6:22-24, 마 1:5), 역시 하나님을 의지하며 시어머니를 따라 이스라엘로 돌아와 다윗왕의 증조모가 된 모압 과부 룻이 있었습니다(룻기 전체, 마 1:5). 당대 굉장히 크고 강한 도시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해 아예 성 통째로 목숨을 건진 기브온 성 사람들도 있었구요(수 9:1-10:2, 삼하 21:1-9, 느 7:25). 이런 이스라엘의 불순종에 대해 하나님이 경고와 권고의 끝에 결국 응징하신 것과 순종에 대해 복을 내리신 것, 그리고 이방인에게도 하나님의 일이 알려져있었던(민 22:1-6, 수 2:8-14, 대하 35:20-22)&nbsp;내용이 적어도 이스라엘 민족이 이방민족을 정복한 내용보다 더 많습니다. 이방인에게 회개의 기회요? 이방인들에게도 분명 하나님의 일이 알려져있었지만, 그 "선민" 이스라엘민족도 하나님의 표적을 직접 몇번씩이나 보고도 지들 좋을대로 하나님을 외면했는데, 하물며 이방인이 하나님에게 돌아온다면 얼마나 돌아왔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방민족인 앗수르(앗시리아)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내용도 있었는데(요나서 전체), 그런 앗시리아도 결국은 계속된 불순종이나 죄악으로 멸망했죠(나훔서 전체). 실로 인간은 하나님을 찾지도 않으며 깨달으려 하지도 않습니다(롬 3:10-18).<br><br>진정,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싶은 것만 보려 하고, 그것을 전부인 것으로 믿고싶어 합니다. 하긴 그게 인간이니까요. 지극히 "인간적인" 행동이긴 합니다. 빵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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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01 Mar 2008 19:23:33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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